의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의학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환자를 만나면서 종종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어디까지 치료할 수 있을까? 저마다 잘 치료한다는 자랑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저는 의학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 제가 말하는 ‘의학’은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모두 포함하는 의학입니다. 한의사로서 의학을 비난하는 건 아니에요. 의료인은, 꽤나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약이라는 도구를 독점하고, 진단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요. 과연 의학이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요?

올해 봄, 심하게 아픈 아이들

기관을 처음 시작하고 며칠만에, 폐렴에 걸려 입원을 했습니다. 항생제를 거의 한달을 복용했고, 부작용으로 설사와 두드러기도 겪었습니다. 한약과 양약 치료가 모두 들어갔고, 결국 아이는 잘 이겨내 다시 기관을 나갔습니다. 한달동안 치료를 하며 부모와 함께 많은 고민을 나눴습니다. 약을 조금 더 빨리 썼다면 안 아팠을까? 길어지는 치료에서 약을 계속 써야할까? 아마도 아이를 낫게 한건 약이 아니라 시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아기 때 열성경련을 했던 아이가, 열이 올라 병원 진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경련을 할 수 있다며 강한 약을 처방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경련을 했습니다. 다행히 가볍게 지나갔지만, 막기는 어려웠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해열제를 미리 복용해도 열성 경련을 예방할 수 없지만, 열성 경련을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 두뇌 발달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현재 의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괜찮다는 안심 정도입니다.

의학의 한계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치료하지 못했지만, 역할이 없진 않습니다. 치료할 수는 없지만, 어떤 약이 도움이 안 되는지, 후유증이 생기지 않고 괜찮은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꽤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의학은 이렇게 발전합니다. 새로운 치료 방법을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동안 잘못 치료했던 관행을 수정하고, 불필요한 치료는 줄이고, 약이 없어도 잘 낫고, 후유증 없이 괜찮다는 의학 지식들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부모님에게 말씀드리는 위로는, 그저 잠깐의 안심을 위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꽤나 알맹이가 차있는 과학의 언어입니다.

아이들이 자주 걸리는 감기가 좋은 예입니다. 감기는 치료약이 없습니다. 연구 결과를 통해, 항생제가 도움이 되지 않고, 콧물 기침약도 쓰지 말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의학은 아직 감기를 치료하는 약은 개발하지 못했지만, 약이 감기를 낫게 하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감기약은 쓰지 않는게, 더 발전된 의학의 모습입니다.

약 대신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면?

병원에 가면 약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작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설명인 경우가 있습니다. 약보다 도움되는 방법과 약을 안 써도 낫는 이유를 말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2분 진료에서 이야기보다 마우스 클릭으로 약을 처방하는게 빠릅니다. 부모의 마음도 약을 찾게 됩니다. 아파서 힘든 아이에게 빨리 약을 써야 할 것 같거든요. 때로 강한 약을 처방해주는 병원을 찾기도 합니다.

제가 배운 의학과 현실이 참 다릅니다. 최신 의학은 발전하고 있는데, 진료실은 20세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공부를 안 하는 걸까요? 아니면 현실의 한계일까요? 결국 병원도 장사이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늘 고민이 됩니다. 지금은 아이에게 약을 안 쓰는게 최선인데, 그걸 부모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강하게 설명하고, 때로는 중간 지점을 제시하고, 때로는 부모가 원하는 방향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무엇도 하지 않는게 지금의 최선일 수 있습니다. 꼭 약을 쓰는것만이 의학의 역할은 아닙니다. 때로 약을 쓰지 않아도 낫는다는 사실, 지금은 스스로 낫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잘 설명해야 합니다. 지금 바로 낫지 않더라도, 함께 낫기를 기다려주는 병원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환자 혼자서는 힘들거든요. 아픈 아이를 돌보는 부모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병원은 그저 약만 처방하는 곳이 아니라, 마음의 안심도 함께 얻는 장소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설득의 기술이 필요한데, 이건 교과서와 논문에는 없어서 더욱 어렵습니다. 저의 역할을 더 잘 하려면, 더 잘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방법도 함께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의원을 시작한지 10년이 넘게,
끊임없이 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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