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에 대한 고찰, 나쁜 염증을 없애자?


염증 때문에 아픈 거죠?
진료실에서 참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목에 염증이 생겨서 열이 나고, 코에 염증으로 콧물이 나고, 기관지 염증으로 기침을 합니다. 비염, 아토피 피부염, 관절염, 위염의 질환 이름에도 모두 염증을 의미하는 ‘염’이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염증이 아프게 하는 원인이고, 물리쳐야 할 치료 목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염증이 꼭 나쁘진 않습니다.
사실 염증은 우리 몸에 필요한 작용이자 중요한 무기입니다. 저의 부족한 권위를 보충하기 위해, 하버드 의과대학 칼럼을 인용해보면, 염증은 중요한 방어 시스템이고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Inflammation is an important part of this defensive system and one that is essential for our survival.)
우리가 다치거나 몸에 병균이 침입하면 염증이 생깁니다. 붓고, 통증이나 열감이 생기고, 붉게 변합니다. 이러한 반응을 우리는 ‘아프다고’ 느낍니다. 아프면 불편하고 힘듭니다. 그래서 염증을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픈 부위에서는 면역 물질들이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염증을 통해 병균과 싸우고 부상에서 회복합니다. 염증이 꼭 나쁘진 않습니다. 사실 염증은 꼭 필요한 작용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게요. 요리를 하다가 손 끝을 살짝 베었습니다. 피가 나면서 통증이 있고 붉게 변합니다. 염증 반응입니다. 분명 아프고 불편하지만, 한편으로 염증을 통해 상처가 회복합니다. 염증이 없다면 상처가 낫지 못합니다. 감기는 어떨까요? 염증 반응으로 목이 붓고 열이 나고 콧물이 납니다. 염증이 없다면 열이 나지 않겠지만, 병균이 우리 몸을 점령해 생존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콧물이 안 나면 불편하지 않겠지만, 지금 콧물 안에는 병균과 싸우기 위한 면역 물질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열과 콧물, 즉 염증 반응은 우리 몸이 감기 병균과 싸우기 위해 필요한 무기입니다.
열이 나쁜 게 아니라구요?
머리 속이 복잡해집니다. 아이가 아파서 열이 나면 바로 해열제를 먹였는데, 열이라는 염증 반응이 필요한 무기라면 그대로 놔둬야 할까요? 미국 소아과학회에서는 열 자체는 질환이 아니고, 병균과 싸우기 위한 방어 작용이고, 열로 인해 아이가 불편하지 않으면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염증이 우리 몸에 필요한 방어 작용이라면, 염증을 바로 없애기보다, 적절히 이용해야 합니다. 미열에서 바로 해열제를 먹기보다, 열이라는 면역 작용을 활용하면 더 좋습니다.
그럼 아이가 고열이 나고 힘들어도 그냥 놔둬야 하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분명 열이라는 염증 반응을 통해 병균과 싸우고 있지만, 과도해서 힘들면 조금 줄여야 합니다. 너무 아파서 몸이 힘들면, 회복 과정을 방해합니다. 고열과 기침이 심하면 밤새 잠이 들기 힘듭니다. 수면과 회복을 방해할 정도의 힘든 염증 반응은 조금 줄이면 좋습니다.
병균과 싸움을 이겨내면 염증은 차츰 줄어듭니다. 감기로 인한 염증이 회복하려면 1~2주가 걸립니다. 약을 써서 염증을 치료하는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염증이 저절로 줄어듭니다. 약은 그 과정을 조금 거들 뿐입니다. 약을 잘 쓰는 요령과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가벼운 염증 반응을 잡겠다고 강한 약을 쓰면 회복 과정을 방해할 지도 모릅니다. 염증을 잘 이용하면서, 염증으로 힘들지 않도록, 필요한 약을 적절히 사용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나쁜 염증을 알아볼게요.
위에서 살펴본 급성 염증은 우리 몸에 필요한 작용입니다. 염증이라는 무기를 다 쓰고 나면, 염증이 없는 평소 상태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염증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만성 염증입니다. 현대인의 많은 질환은 만성 염증이 원인입니다. 비염으로 만성 염증이 지속하면 늘 콧물로 불편합니다. 위장관에 만성 염증이 지속하면 설사와 복통으로 힘듭니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만성 염증이 지속해 피부가 늘 가렵습니다. 모두 불필요한 염증 반응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입니다. 만성 염증은 치료해야 합니다. 염증 치료만이 아니라 염증을 계속 일으키는 망가진 면역 체계와 생활 습관도 함께 고쳐야 합니다.
만성 염증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현대인의 식생활을 지목합니다. 햄버거, 피자, 베이컨, 정제당, 기름진 음식들이 우리 몸 안에 들어가 만성 염증을 일으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앉아있는 정적인 생활 습관도 만성 염증에 영향을 줍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정상적인 방어 작용을 항진시켜 만성 염증을 유도합니다. 만성 염증을 없애기 위해서는 식생활, 운동, 스트레스와 같은 평소 생활 관리가 중요합니다.
좋은 염증과 나쁜 염증 구별하기
염증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반드시 나쁜 건 아닙니다. 염증 반응이 과도하거나 오래 지속하면, 나쁜 염증일 수 있습니다. 감기나 장염, 상처에서 생기는 염증 반응은, 좋은 염증일 수 있습니다. 염증이 좋다고 표현하니까 어색하죠? 하지만 염증을 나쁘게 생각하고 무조건 없앤다면, 우리 몸의 중요한 방어 무기를 잃게 됩니다. 가벼운 염증을 초반부터 바로 치료하는 전략이, 꼭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염증인지, 나쁜 염증인지, 염증의 역할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염증은 면역력의 중요한 무기이고, 염증을 영리하게 활용해야 나쁜 병균과 잘 싸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