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와인 한 잔, 건강에 좋을까요?

하루 한 잔 술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죠?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저녁 식사에 와인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이 참 우아하게 그려집니다. 매일 마시는 가벼운 술 한 잔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도 후광에 아른거립니다. 이 유행은 1991년 미국의 CBS 방송국에서 시작했습니다. 왜 프랑스 사람들은 버터가 가득한 음식을 매일 먹어도 미국 사람들보다 심장 질환이 적은 걸까? CBS 특파원 몰리 세이퍼(Morley Safer)는 와인 한 잔에서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프랑스인의 식탁에는 우아한 레드 와인이 꼭 한 잔씩 있었던 거죠. 우리 나라가 미국인의 식생활을 쫓는 느낌과 비슷하게, 미국인은 프랑스인의 식생활이 부러웠나 봅니다.
몇몇 의사와 과학자들은, 와인에 혈관 청소 효과(flushing effect)가 있어, 혈관벽에 불순물이 응고되어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예방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발표된 과학 연구 결과들이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했습니다. CBS 방송 이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국 내 와인 판매는 40%가 증가했고, 이 유행은 수십 년 동안 전세계 곳곳으로 퍼졌습니다.

연구 결과를 다시 검토해 찾아낸 오류

그런데 연구를 다시 꼼꼼히 살펴보니 오류가 있었습니다. 하루 한 잔 적당한 음주를 하는 사람은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아 다른 건강 습관들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음주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이전에 건강 문제가 있어 금주로 바꾼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해서 이전 연구를 다시 분석한 결과, 가벼운 음주는 건강에 어떤 좋은 효과도 없었습니다. 이후 새롭게 진행된 연구들에서도 음주에는 건강 효과가 없다는 결과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잘못된 유행이 뒤집히는데 30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혼란스러운 미국인들

음주가 건강 효과가 없다는 내용을 실은 뉴욕 타임즈 기사의 댓글들이 흥미롭습니다. 뉴욕 타임즈는 유료 구독제이고, 트럼프 비판과 친민주당 기조에, 과학 친화적 성향을 가집니다. 코로나 백신에 대한 찬반 여론이 갈라진 미국에서 백신 찬성에 가까운 성향이니깐요. 하지만 알콜에 대한 최신 과학 연구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와인을 수십년째 마시고 있지만, 나는 건강하다는 증언들이 꽤나 많습니다. 아마도 음주의 영향으로 사망한 분들은 댓글을 달지 못하겠죠. 만약 이러한 증언들로 연구를 한다면 결과는 당연히 편향됩니다. 최근 과학 연구는 이러한 오류를 밝혀낸 겁니다. 그럼 마찬가지로 20년 후에 다시 과학 연구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이건 매우 비과학적이라는 시니컬한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과학입니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말을 꽤 신뢰합니다. ‘과학’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면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합니다.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라서 신뢰를 받지 못하고, 많은 한의사들이 신뢰를 높이기 위해 과학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학은 현대 사회에서 굉장한 권위를 자랑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종교’는 아닙니다. 저명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반증되지 않는다면 과학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과학은 새로운 증거로 반증되면서, 더 나은 이론으로 발전합니다.

잠시 미국의 식생활에 대한 고찰

제가 보기에 미국의 식생활은 이상합니다. 아침 식사로 팬케이크와 베이컨을 먹고, 점심은 햄버거와 감자 튀김, 저녁은 스테이크를 먹습니다. 와인과 맥주, 위스키와 콜라가 늘 곁에 있습니다. 덕분에 미국 사회 전체에 비만이 너무 늘어나 문제가 되었고, 제약 회사는 비만을 치료하는 호르몬 약물을 만들어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누군가 방송에서 뱉은 말 한 마디가 전세계에 유행을 일으켰고, 이걸 다시 과학으로 뒤집는데 30년이 걸렸습니다. 30년 동안 매일 와인 한 잔을 마신 사람은 꽤나 억울할 법 합니다.

그렇다고 술이 꼭 나쁜 건 아닙니다.

저는 다른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지만, 꼭 술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고된 하루 일과가 끝나고 목을 적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반가운 친구를 만나 부딪히는 소주 한 잔, 애인과 멋진 데이트를 하면서 채우는 와인 한 잔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술은 몸의 건강보다는 마음의 위로에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건강을 위해 굳이, 와인 한 잔을 마실 필요는 없다는 거죠. 아마도 최신 과학 연구가 전세계의 알콜 소비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거에요. 여전히 알콜 씬은 과학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사각 지대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맥주 한 잔을 부딪히며, ‘건강을 위하여’ 라는 건배사는 줄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국 드라마에서 우아하게 와인 잔을 기울이는 장면도 줄지 않을까 싶습니다. 약주를 곁들이는 어르신에게 한 잔은 건강에 좋다는 덕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정도 변화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술 한 잔이 결코 건강에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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