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서 감기 치료를 할 수 있을까?

최근 한의원에 찾아오는 아이들

한의원에 감기 환자들이 늘었습니다. 다른 한의원을 전전하다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제가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 먼저 찾기는 어렵나 봅니다. 다행히 저의 한의원을 떠나지 않고 대부분 잘 정착하는 듯 합니다. 처음에는 울고 겁내고 대성통곡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저에게 제법 친한 척을 합니다.

그런데 한의원에서 감기를 치료할 수 있냐구요? 네, 치료할 수 있습니다. 감기 정도의 질환도 치료하지 못하면 의학이라 부를 수 없겠죠. 열이 며칠씩 지속하는 아이, 기관지염으로 기침이 심한 아이, 편도 염증이 심하고 중이염을 동반한 아이도, 한의원에서 잘 치료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을 맹신하는 한의사의 허세가 아니라, 과학 연구 결과로 뒷받침하는 한의학의 모습입니다.

한의학의 감기 치료는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의학의 감기 치료는 역사가 깊습니다. 감기 치료에 대해 자세히 다룬 <상한론>은 가장 오래된 한의학 전문 서적 중 하나입니다. 증상과 진행에 따라, 세분화된 감기 치료 방법의 제시는 현대 의학보다 더 자세하고 실용적입니다. 2천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식견과 처방이 훌륭합니다.

한의학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감기 치료 방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시대에 따라 치료 패러다임이 몇 번씩 바뀌면서, 더 나은 치료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21세기에 이르러서는 현대 과학의 연구 방법들로 한의학 치료 방법의 효과를 증명해가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치료 효과는 괜찮습니다. 한의학이 과거에만 그대로 머물러 있진 않습니다.

서양 의학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까?

제가 처음 감기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감기약을 지나치게 처방하는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단순한 감기 치료에서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을 줄여야 한다는 문제 의식은, 한의사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서양 의학에서는 감기 치료에서 감기약과 항생제를 처방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수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치료 효과가 없다는게 밝혀졌거든요. 최근 전문가들은 축농증과 중이염에서도 항생제 복용을 줄이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감기 치료 분위기는 조금 달라보입니다. 아이들이 복용하는 감기약의 종류가 여전히 꽤 많습니다.

그래서 한의원에서 감기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며칠씩 고열이 떨어지지 않는 아이들도 한의원에 많이 찾아옵니다. 부모님의 걱정만큼은 아니겠지만, 아이의 치료를 맡은 저도 고민이 많이 됩니다. 밤 늦은 시간과 주말에도 부모님과 연락하며, 응급실에 갈 지, 위험한 신호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치료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10년 동안 수많은 고민들과 함께 지금은 꽤 많은 감기 진료 노하우가 쌓였습니다. 이전보다 조금은 여유있게 아이들의 감기를 관리합니다. 혹시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한의학 감기 치료를 조금 더 자랑해볼게요.

한의학 감기 치료, 뭐가 다른가요?

한의학의 감기 치료를 여러 방향으로 감기 병균을 포위 공격합니다. 염증 치료에 좋은 효과가 있는 한약재가 있고, 감기와 싸우는 면역 반응을 강화하는 한약재가 있고, 여기에 열, 콧물, 기침과 같은 특정 감기 증상을 타겟팅한 약재들도 있습니다.

서양 의학의 장점이 ‘분해’라면, 한의학의 장점은 ‘조합’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여러 계통의 한약재를 조합하면, 다양한 종류의 감기 한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적게는 한약재 2개에서, 많게는 20~30개까지 한약재가 들어갑니다. 마구잡이로 더하는 건 아니고, 한의학 나름의 조합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감기의 진행 단계, 증상, 체질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의학의 역사는 약재를 조합하는 이론이 발전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여러 시대의 이론을 참고해 저만의 노하우로 감기 한약 처방을 만듭니다. 앞에서 소개한 2000년전 <상한론>에서는 감기의 진행 단계를 참고해 초기감기한약과 열감기한약을 만들었습니다. 콧물한약과 기침한약은 <동의보감>을 참고했습니다. 독감한약, 폐렴한약, 축농증한약, 코막힘한약, 중이염한약은 최신 한의학 논문들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한의원에는 꽤 많은 종류의 감기 한약이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약의 종류가 다양한만큼 세밀하게 감기 치료가 들어갑니다.

저는 이렇게 감기의 진행 과정과 증상에 따라 달라지는 한의학 감기 치료의 특징이 흥미롭습니다. 열이 나는 아이에게 서양 의학에서는 해열제가 주요 치료 방법이죠? 이것도 요즘에는 과도한 해열제 복용을 지양하는 분위기이긴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발열의 정도를 병균이 침입한 깊이의 차이로 보고 치료 방법이 달라집니다. 38도 미만의 미열, 38~39도 정도의 발열, 39도 이상의 고열은 치료 방법이 다릅니다. 저도 각각의 발열 상태에 맞춰 세 가지 종류의 한약을 처방합니다. 그리고 같은 기침 증상이라도 감기의 진행 단계에 따라, 시작하는 기침과 심한 기침, 나아가는 잔기침의 치료 방법이 다릅니다.

한의학에서는 감기 증상을 단지 병균과 염증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병균이라는 ‘객체’와 싸우는 내 몸의 면역 ‘주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병균이라는 ‘객체’만 바라본다면, 병균을 죽이고 염증을 없애는 공격적인 치료만 가능합니다. 실제 병균과 싸우는 건, 약이 아니라 나의 몸입니다. 한의학은 내 몸의 면역력이 병균과 잘 싸울 수 있도록 필요한 무기를 잘 제공하는 전략을 취합니다. 이제 막 침입하는 병균과 거의 싸워서 물리친 병균과 싸우는 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항생제 처방에 대한 반대 치료

저는 이러한 특징을 더 봐주시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아무래도 항생제 처방에 대한 걱정이 한의원을 찾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물론 홍보 전략에서 상대의 실책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항생제 처방에 대한 네거티브에 집중하면 한의학 치료의 본질을 잃게 됩니다. 자칫 모든 약물 치료에 대한 반발로 확산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은 당연히 줄여야죠. 상대방의 비난에만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치료 분위기를 만들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불필요한 항생제를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한의원 바로 앞에 있는 소아과도 항생제 처방이 적은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옆에서 누군가 잔소리를 하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의사들도 꽤 많은 잔소리와 비판을 들으면서 부족한 점들을 조금씩 고쳐가고 있습니다.

항생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저는 한의원에서 부모님의 기대보다 항생제 복용을 더 권하는 편입니다. 이번에는 항생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소아과 진료를 받고 오시라고 권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불필요한 약은 줄여야 하지만, 필요한 치료는 놓치면 안 됩니다. 한의학과 서양의학, 둘 중에 꼭 하나만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최선의 치료를 선택하고, 두 가지 치료를 병행하는 방법도 좋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의사니까 한의학의 장점을 더 소개하고 싶습니다. 항생제 복용을 줄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이의 감기가 잘 나아서 한의원을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에게 감기한약의 효과가 좋다는 피드백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복잡한 한의학 이론보다 결국 치료가 잘 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의학 치료는 분명 장점이 있습니다.

한의원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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